'대안대학의 사례와 지향점'을 주제로 한
이도흠(한양대 교수·전 지순협 대안대학 이사장) 선생님의 강의와
이를 바탕으로 불교시민단체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토론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안대학의 사례와 지향점>
대안대학의 지향점
불교시민단체의 방향성 논의
사회자 : (사)불교아카데미, 종교와젠더연구소 옥복연 원장
발표자 : 이도흠 한양대 교수·전 지순협 대안대학 이사장
한국 대학의 위기, 나아가 지구의 위기
시민 주체의 형성을 위한 교육이 필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불리었던 대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 대학의 목표는 취업률, 대학평가 순위 상승, 지원금의 확보이기에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취업 공부를 합니다. 대학서열화의 강화로 35조 이상의 공교육비를 투여해서 99%의 루저(loser)를 양산하고 있는 셈으로, 이른바 명문대학교에 입학한 1% 이하의 학생들 모두를 루저로 만들고 있습니다.
졸업 이후에는 어떠한가요. 우리나라 로봇화 비율 1만 개의 일자리 당 932대로 세계 1위입니다. 이는 국가와 기업의 밀착 관계가 강하고 노조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지요. 더 큰 문제는 고스트 워커의 증가입니다. 고용자 장부에 없는 실재하지 않는 피고용자의 존재는 불안정한 노동을 의미하며 노동 운동 자체가 무력해짐을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노동자의 위치가 열악해도 끝까지 투쟁하면 자본이 양보하던 시대를 지나 현재는 자본의 양보 없이 로봇으로 대체하는 사회가 도래하였습니다. 노동 운동, 진보 운동 자체가 약화 된 것으로 로봇의 생산성은 인간의 천 배 이상이고 이는 로봇 봉건제의 도래가 머지않았음을 시사합니다.
21세기의 우리는 6대 위기, 즉 불평등의 극대화와 생존의 위기, 기후와 환경 위기, 3차 디지털·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위기, 지정학적 갈등과 전쟁의 위기, 간헐적 팬데믹의 위기, 공공영역 붕괴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헤쳐나갈 시민 주체의 형성이 시급합니다. 대안대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대안대학 사례 : 장점과 단점
미국 딥 스프링즈 대학, 프랑스 파리 8대학, 영귝 슈마허 대학
미국의 딥 스프링즈 대학은 오지 사막에 위치합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며 학문과 노동의 조화를 목적으로 전교생은 물론 교수들이 함께 일하고 공부하며 생활해요. 매년 12~15명의 학생이 입학, 2년 과정으로 전교생이 30명을 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대안대학이지만 졸업생 대부분이 하버드, 예일 등 명문 사립대학으로 편입하며 미국 내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수정예라는 장점은 동시에 대안의 교육을 대중들에게 전수하는데 불리한 단점이며, 자본주의 혹은 미국의 가치와 삶에 대한 대안의 가치를 지향하지는 않기에, 제도권 바깥에서 이에 균열을 내는 교육의 꼬뮌(Commune)으로서 대안성을 갖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파리8대학의 경우 성공적인 대안대학의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157개국의 국적을 가진 약 21,00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으며 국제 교류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8대학은 ‘교육의 기회균등과 형식을 떠난 자유로운 학문연구’를 기치로 교육이념, 교육 방식, 교육의 효과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대안대학의 전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학을 공적인 가치로 규정하여 거의 모든 대학의 수업료를 면제하는 프랑스 적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있지만 동양은 없으며,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기에 결국 구조적으로는 ‘제도권에 수렴’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영국 슈마허 대학은 심층생태론을 바탕으로 마음챙김, 개인의 명상, 동서양의 조합, 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정을 다루는 3주부터 1년까지의 단기 과정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듣기와 쓰기가 가능하면 입학 제한이 없으며 자본주의적 가치와 삶을 부정하고 그 대안으로서 생태론적 세계관과 삶을 제시하고 실천하도록 이끌고 이를 위하여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과 방안, 대안적 삶과 수행을 종합하고 있어 이런 삶을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대학에서 최소한 단기과정의 한 교과목이라도 참여하기를 꿈꿉니다. 그러나 생태 문제의 근본인 자본과 제국, 국가, 토건카르텔 등에 대한 접근, 분석, 비판 없는 생태적 주장은 공허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안대학 제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까요. 노동과 환경, 여성 및 소수자의 연대를 기반으로 한 대안대학, 시민보살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6대 위기는 사실상 다 얽혀있고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봅니다. 식량 문제의 경우 지구에서 식량은 82억 명 이상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양이 생산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백 만 어린이가 굶어 죽는 것은 결국 분배의 문제이며 생산 관계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주택 보급률은 102%이다. 그런데 주택 소유는 52%에 그치지요. 해결책은 공공임대 주택을 만드는 것, 결국 생산 관계를 바꾸는 것입니다.
‘탈성장’, ‘탈자본’ 없이는 6대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대안의 패러다임, 대안의 세계관, 대안의 사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또한 새로운 인간향을 육성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홍익인간을 만들지 않지요. 그렇지만 근대적 개념인 ‘시민보살’로는 부족합니다. ‘주체적 힘’이라고 함은 자기 앞의 세계를 인식하고 올바른 해석을 한 후, 지향성을 갖고 그 지향성에 맞게 실천해 나가며 모순이 있을 때 저항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시민 주체적인 개념일 것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새로운 대안대학의 지향점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1. 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 체제, 혹은 현대성 내지 현대 문명의 모순을 직시하고, 좌에서 우로 스펙트럼은 다양하되, 이의 대안적 체제와 삶, 세계관을 지향해야 한다.
2. 현 체제에 대한 기생전략으로써 꼬뮌을 구성하고, 잉크전략으로써 현 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 및 모든 허위의식을 해체하는 담론을 구성해야 한다.
3. 대안대학 자체가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4. 협동조합 또는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재정의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
5. 지역의 문화 및 사람들과 결합, 연대해야 하며 지역공동체의 구성에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
6. 학생의 자치를 최대한 보장함은 물론, 학생들이 학사, 교육과정 설계에 주체가 되어야 한다.
7. 학교 내에서 생기는 문제는 응보적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에 입각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대안대학은 구성원 사이의 유대가 가장 중요하다.
8. 공유경제를 추구해야 한다. 소유에서 접근으로, 독점에서 공유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 체제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개체를 창출했을 때 대변혁이 발생했으며 공유경제는 지속가능한 발전과도 결합할 수 있다는 점,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협력을 하고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존재라는 점, 밀레니엄 세대는 소유권보다 접근권을 선호하고 공감력이 뛰어나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9. “개인이 변해야 세계가 변하고 세계가 변해야 나의 변화도 유지된다.”라는 마음으로 개인의 변화와 세계의 변화를 종합한다. 명상과 수행을 통한 개인의 거듭남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실천을 종합하는 교육을 실시한다.
10. 치열한 경쟁, 과다한 노동, 대학입시 위주와 경쟁 위주의 교육, 사교육의 압도 등 한국적 교육 모순을 극복하고 한국인과 한국사회, 지역사회와 문화와 부합하는 대안대학을 구성한다.
11. 서양학문의 수입오퍼상과 동양고전의 고물상을 모두 지양하여,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과학을 종합해야 한다.
12. 근대와 탈근대, 아날로그와 디지털형 인간을 종합하되, 인공지능시대를 선도할 수 있도록 첨단기술과 문화에 관한 교육도 수행하여야 한다.
더 이상 여유는 없습니다. 지구에는 순환과 정화가 가능한 ‘빈틈’이 고갈되었습니다. 전 인류가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세계의 변화에 나서야 하며 대안대학 역시 이의 일환이겠지요. 불교계 시민 단체들의 걸음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죽어가는 생명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고 실천하는 것이 지구는 물론 우리 자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생명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곳에 붓다와 예수는 자리합니다.
강의를 마치며
참여자 : 우리나라 대안대학 교육의 만족도는 어떠한가요? 또한 취업은 어떤 형태인지 궁금합니다.
이도흠 : 대안고등학교 졸업생들보다는 대학을 경험한 후 실망하고 찾아온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교육 측면의 만족도는 높지만 학력 인정이 안 되어서 취업보다는 예술계통의 공부를 원하는 학생들이 많고요. 그렇지만 안상수 디자이너로부터 시작된 타이포그래피 학교 ‘PaTi’의 경우처럼 학력 인정을 떠난 메리트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사회자 : 불교시민사회에서 대안대학을 만든다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요.
이도흠 :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방식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하나의 풀뿌리 진지들을 만들어 가야해요. 우리나라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는 ‘고립’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행복하지만 사회와 연계가 되지 않아요. 우리는 유기적으로 움직여 사회와 연계된 공동체로서 자본주의에 포섭되지 않고 사회를 변화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 따로, 공동체 따로가 아니라 출발은 하나의 공동체였을지라도 나중에는 그 공동체들이 모여 사회가 되고 가 안에서 교육, 의료, 소득 등 삶이 갖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 : 현실적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현재 불교시민사회단체들은 1년에 2~3개 정도의 작은 강좌들을 서로 단절된 채 각자 진행하고 있기에 불교시민사회단체들이 강좌를 하는 전문교육기관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과 고민을 나누다가 오늘의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해외 불교 관련 교육 기관들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민정희 :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 활발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불교 교육기관 SEM(Spirit in Education Movement)은 대학보다는 평생교육기관의 개념으로 시민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기관 자체 내 교육은 물론 위탁교육도 하고 있으며 가장 큰 특징은 사회 전환을 위해 사람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나를 찾고, 개인과 개인이 어떤 관례를 가져야 하는지,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지역사회를 시작으로 국가까지 염두에 둔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불교적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지만 더 넓은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교육생들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활동가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 생태마을네트워크인 ‘에코빌리지 네트워크’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1만 개가 넘으며 우리나라에도 글로벌 에코빌리지 네트워크 젠 코리아 3개 지부가 설립되어 있습니다. 명성과 갈등 해소 기법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전 세계 젠 활동가들을 키우고 훈련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개인을 넘어선 사회와 사회 구조를 보는 교육과 토론 등의 대안교육이 이루어집니다. 그 외에도 아이넵 인스티튜트는 종교와 상관없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청년 활동가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례들을 보고 방향성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 감사합니다. 늘 어떠한 이슈로 모임을 하게 됩니다. 오늘처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모임은 드물기에 오신 모든 분들이 더욱 소중합니다. 앞으로 민주시민보살을 양성하기 위한 모임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걸음에 함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_()_
※ '대안대학의 사례와 지향점'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파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